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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카투사 교육, 그리고 시험이라는 관문

theleaf99 2026. 2. 5. 19:31

모두가 끝났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논산훈련소에서의 5주간 훈련이 끝났을 때, 같은 분대의 한국 육군 훈련병들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곧 배정받을 자대배치에 묘한 설렘을 느끼는 듯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나와 같이 카투사 훈련병들은, 곧 이어 3주간의 카투사 후반기 교육에 묘한 씁슬함도 느꼈다. 그렇게 같이 고생을 한 육군 전우들을 배웅하고, 우리는 곧바로 평택에 위치한 미군 본대, 캠프 험프리스로 이동해 3주간의 후반기 카투사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미 한 차례 훈련을 마친 상태였기에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후반기 교육은 단순한 적응 과정이 아니라, 자대 배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단계에 가까웠다. 이 교육을 무사히 마쳐야만, 비로소 카투사로서의 군 생활이 시작될 수 있었다.

made by Canva AI, 당연하지만, 사진보다 훨씬 시설이 좋은 곳이다.

한국군과는 다른 결, 미군식 교육

후반기 교육은 분명 한국군 훈련과는 결이 달랐다.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간부들이 ‘귀한 남의 자식들이 고생한다’는 것을 알고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반면, 미군은 진짜 프로페셔널한 ‘군인’을 키워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국 육군에서는 군인으로써의 마음가짐을 가르쳤다면, 미군에서는 군사용 영어 표현, 지도 읽는 법, 기본적인 미군 전술 개념 등을 배우는 시간이 많았다.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약어, 지시 체계, 사고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생활 환경은 확실히 나았다. 다인실 생활관이 아닌 2인 1실 침대, 비교적 질 좋은 식사(물론 그것마저도 교관이 관리했지만), 그리고 체계적인 일정. 하지만 그 안에서도 훈련은 훈련이었다. 새벽 4시에 기상, 반복되는 훈련, 불침번은 여전히 일상이었고, 몸은 다시 지쳐갔다. 그럼에도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시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made by Canva AI, 오전에 수업에서 배우고, 불침번할때 외워가며 시험을 쳤었다.

영어 시험, 쉽지만은 않았던 이유

영어 시험은 상대적으로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암기과목이었기 때문에, 영어가 익숙한 사람들은 수월하게 풀고 나왔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영어가 익숙하지 못한 몇몇 훈련병들은 카투사를 포기하고 한국군으로 자대배치를 요청한 사람들도 있었다. 자대배치는 성적순으로 되는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마치 수시로 대학교를 합격하고 수능 최저를 맞추려는 것과 결이 같았다. 실수 한번으로 영어시험에서 떨어지면, 체력이 아무리 좋아도 유급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안심하지 못했다. 만약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는 한 달을 더 이곳에 머물며 다음 기수를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 동안의 생활은 지금까지의 훈련을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made by Canva AI. 실제로는 PT복을 입고 뛰었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 글씨로 ARMY라고 적힌. 자대에선 군복을 입고 뛰기도 한다.

체력 테스트, 숫자로 평가되는 시간

후반기 교육의 가장 큰 고비는 단연 체력 테스트였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2마일 달리기. 한국군에서도 이미 통과를 했기때문에 여유를 보이는 훈련병들도 있었지만, 미군의 기준은 더 깐깐했다. 다행히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는 자신있었지만, 2마일 달리기를 시간안에 들어오는 것은 단지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끝까지 뛰고자 하는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기준 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은 훈련 기간 내내 따라다녔다. 하루하루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머릿속 한켠에는 늘 숫자가 떠올랐다. 몇 초를 더 줄여야 하는지, 지금 페이스로 가능한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계산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대배치를 받지 못하고 유급을 하여, 다음 기수가 들어올때까지 훈련소 생활을 이어가야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카투사의 꽃이라 불리는 주말 외박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중 어느 누구도, 유급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통과를 하려는 이유

영어 테스트가 끝난 뒤, 다음 날 새벽, 드디어 체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통과한 후, 마지막 2마일 달리기를 위해 모두가 출발선에 섰다. 교관의 공포탄과 함께 훈련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차디찬 가을 새벽의 공기는 점점 숨쉬기 어렵게 만들었고, 선두로 뛰고 있던 훈련병들이 반환점을 돌아 내 옆을 지나칠 때마다 시험을 통과하려는 이유를 생각했다.

 

내가 시험을 한번에 통과하려는 이유는, 곧 있을 친형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유급을 당한다면 가족의 경사에 혼자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반환점을 돌아서 골에 가까워 왔을 때, 땀에 시야가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전광판에 빨간색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곳이 골이구나!’ 하고 정신을 차리고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16분 46초, 훈련생기준으로는 최하점이었지만, 어쨌든 통과였다.

 

그렇게 모든 테스트를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대 배치였다. 카투사의 자대 배치는 철저히 랜덤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군대 생활의 시작한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서 자대배치와 첫 날을 기억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