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날을 떠올리면 변화는 늘 갑자기 온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처음엔 뉴스 속 이야기였고, 설마 군대까지 영향을 줄 거라고는 그때까지는 별로 느끼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귀대와 격리 명령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외박에서 부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분대장 선임에게 전화가 왔는데,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급했고, 가능한 한 빨리 복귀하라는 말만 간단히 했다. 이유를 물을 겨를도 없었다. 우선 복귀하는 게 먼저였다.
부대에 도착하니 2주간 격리해야 했다.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특히 군대처럼 빽빽한 곳에서는 조심스럽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그때 건강했지만, 잠복기라는 걸 생각하면 격리는 피할 수 없었다.
운 좋게 격리 중에 식사는 잘 됐다. 선임들이 DFAC, 즉 미군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다 줬다. 밥을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고, 외박 때 가져온 책 몇 권이 그 2주를 견디게 해준 거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은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가장 먼저 맞은 예방접종
코로나가 오래 지속되면서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예방 접종을 받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밖에서는 예방 접종의 안전성이나 종류에 대해 걱정이 많았지만, 군대에서는 선택할 수 없었다. 명령이 내려오면 따라야 했다.
우리가 맞은 건 모더나 예방 접종이었다. 본부나 다른 부대에 있는 군인들보다, 빽빽한 곳에 있거나 순찰 근무가 잦은 헌병들이 우선 대상이 되었다. 그때 군인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확인은 됐으니 맞는 게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실험 대상이 된 것 같다는 말도 흔히 나왔다.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느려진 일상과 중단된 외박
일하는 곳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마스크 착용은 당연했고, 인원 제한이 생겨서 일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주 작은 일 하나를 하려고 해도 예전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그래서 답답함이 쌓였다.
생활 전반의 속도도 함께 느려졌다. 외박은 거의 불가능해졌고, 쉬는 시간과 일상의 경계는 더 흐릿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역 상황이 조금씩 나아져서 외박이 다시 가능해진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상병을 달 때쯤이었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많은 제한이 있었다.

적응이라는 이름의 일상
그래도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자 모두가 새로운 규칙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카투사라는 점 때문에 이런 변화가 비교적 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일반 육군에서 더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을 알고 있었으니, 오히려 군 생활 안에서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 뿐아니라, 난 운이 스스로 인복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은 다 고마운 사람들뿐이었다. 같이 고생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서로를 도와서 난관을 해쳐나가려고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남은 군 생활은 고마운 마음으로 견딜 수 있었다. 불편함은 분명 있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제한 속에서 얻은 것들
전역할 때까지도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자유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럼에도 그 시기에 겪었던 경험들은 나중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스스로를 다스리며 사는 법,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리듬을 유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인종,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했던 경험은 한국에 있었다면 쉽게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군 생활은 불편함만으로 말하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멈춰버린 일상 속에서도 분명 얻은 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