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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아도 흘러가던 시기

theleaf99 2026. 2. 11. 19:19

Canva AI. 그 시절이 편하고 좋다는 건 항상 지나고 깨닫는다.

자동으로 흘러가던 시간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 어린이였다.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까지, 중간에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계획아래 충실히 따랐었다. 뭘 시켜도 그걸 하기 싫다고 한적이 별로 없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건 내가 순종적이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세심하게 나를 지켜보고 원하는 것들을 하게 해주셔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교회 목사가정에, 3형제라는 배경은 풍족한 삶을 살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그럼에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때부터 깨달았던 것같다.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세상에 많다는 것을. 당시에는 내 결핍에 신경쓸 기회가 많이 없었다. 특히 필리핀 선교지에서의 삶은, 내 주변에 나보다 더 힘겹게, 부족하게 살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현지 아이들을 보며 살다보면, 내게 주어진 것에 더 감사하며 살아가게 했다. 

 

 이 일련의 깨달음의 과정들은 사실 내가 알고 싶다고알아지는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그렇듯, 부모의 선택, 학교의 커리큘럼, 주변 어른의 기회 제공등으로 삶이 이어지기에, 나 또한 그런 청소년 중 하나였지만, 감사하게도 돈이라는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었다. 성인이 되고 한국에 홀로 나오게되자, 내가 얼마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는지 깨닫게 되었지만.

대학이라는 과도기

 처음 한국에서 느낀 것은, 나는 완전히 외계인이라는 것이었다. 외계인이라는 것은 별개 아니었다. 같은 피부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생각이 달랐다. 또래 친구들 모두 한국의 교육방식과 생활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대학교에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는 본인들이 살아온 세상과 다른 곳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흘려보냈다. 

 

 참으로 안타깝게 여긴 것은, 몇몇 특출난 친구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확립하고, 인생을 설계했다면, 대학이란 곳에 와서 오히려 길을 잃은 듯한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와 비슷한 부류였다. 다만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현실을 깨닫게 되었을 뿐. 

 

 수강신청이나, 동아리활동 등 주도적인 생활이 늘어났으나 그 뿐, 결국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선택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Canva AI.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해매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졸업 이후, 멈춘 레일

 작가라는 소소한 꿈을 안고, 군생활과 편입까지 장장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여전히 길을 잃은 상태였다. 목적지는 아는데, 그동안 할 기회가 없었던, 사실 하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질문들이 몰려왔다. ‘정말 이 길을 걸어갈 것인가?’, ‘작가가 되면 행복할 것인가?’, ‘적은 수입으로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등,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자격증 준비와 취업을 핑계로 시간을 쓰며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하지만 질문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 그 자체가 정답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문의 답을 찾겠지만, 저건 평생동안 내가 스스로 점검해야할 질문들이었다. 결국 모든 질문이 어떤 고고한 사명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작가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이 나는 행복한가?’, ‘수입이 적어도 나는 행복한가?’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아직은 그 길위에 있어도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언젠가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순간이 온다면, 그 때는 또 다른 길을 고민할 시기가 아닐까?

통제권을 넘겨받는다는 것

 스스로 결론을 내리자, 드디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고민에 파묻혀 단 한글자도 쓰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하루에 한문장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수입에 대한 것도 내가 중심을 잡자 해결되기 시작했다. 독립한지 이미 오래였지만, 드디어 내 삶의 주도권을 찾아온 기분이었다.

 

 사람은 무엇을 상상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는지에 따라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나는 작가라는 꿈을 확정했고, 그러자 작가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으며, 작가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Canva AI. 나이를 먹는것 자체는 큰 생각이 없었는데, 내 주변의 반응이 달라지자 고민이 되었다.

곧 서른이라는 감각

 대한민국에서 30대라는 나이는 굉장히 상징적이다. 더 이상 어리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게 된다. 정확하게는 사회가 당신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부여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전에 이미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존경스러운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30대가 된다는 것보다, 더 이상 20대가 아니라는 감각은 어째서인지 서글픈 느낌과 ‘아, 이제 나도 나이가 들기 시작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가정에서도 대화에 변화가 생긴다. ‘뭐 먹고 살래?’, ‘결혼은 안하니?’ 전에는 마침표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식의 대화가 많았겠지만, 이제는 나름 어른임을 존중하기 위해 질문으로 압박을 준다. 안타깝게도 나는 저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되지않았다. 엄청난 작품을 써서 원고료로 먹고 살겠다는 공수표는 날리고 싶지 않았다. 결혼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변은 점점 우리에게 책임을 지고, 어른의 삶을 살라고 요구한다. 나는 어른인 척은 할 수 있을 것같지만, 아직 어른이 되기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