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생각 – 설날 편)

아무 의미 없이 들리던 시절
요즘 뭐하니라는 질문은 어느 가정이나 매명절때마다 단골 질문이다.
어린 시절을 외국에 나가있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주로 선생님들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근황을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방학은 재미있게 보내고 있는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등등,
만약 미래의 계획을 묻고 싶다면 ‘커서 뭐할거니?’라던지, ‘나중에 뭐가 되고싶니?’라고 물어보았다.
꿈이 아주 컸던 청소년기에는 미래의 계획을 얘기하는 것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게 현실성이 있던지 없던지, 어른들은 꿈을 크게 잡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앵무새처럼 내 꿈과 목표를 반복해서 얘기하곤 했다.
질문에 설명이 필요해지던 대학 시절
한국에 들어오자 질문자는 친척들이 되었다. 20살을 넘긴 나에게 그 질문은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닌, 어느정도 현실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신입생 때만 해도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있는 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게 나에겐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달라진 것 없었다. 여전히 같은 내용으로 내 포부를 전했고, 왠지 시선이 묘해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 길을 원해서 선택한게 아니라, 어린 시절 뱉은 말들을 지키고 싶어했다는 것을.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상상했던 삶과 달랐고, 그 길을 걸을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당연히 성적으로 내 심리 상태를 대변했다. 그 때부터, "요즘 뭐하니?"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었다.
같은 질문, 달라진 무게
"요즘 뭐해?" 아마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일 것이다.
"그냥...자격증 공부도 하고,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어." 라고 답하면서도, 자신이 있었다면 앞에 '그냥...'은 말하지 않았을텐데.
아마 어머니도 자신없는 아들의 말에 느끼고 계실 테지만, 졸업 이후 취업과 무관한 삶을 선택하더라도,
현실, 즉 뭘 먹고 살거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길 원하셨던 것같다.
실제로 자격증 공부도 하고, 일도 준비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없다는 것은 그 일의 성패가 불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취업 준비하고 있어요." 라고 한다면, 이제는 "어느 기업?"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 대답에도, 어떤 일인지, 분야는 무엇인지, 전공은 살리는 건지 등등 여러 질문들이 뒤따라온다.
그들의 기대에 못미칠까봐, 혹은 스스로도 이뤄놓은 것이 없어 부끄러워서.
여전히 대답을 얼버무리면서 지내고 있다.

걱정이라는 말의 온도
다행히 철이 들었는지, 그런 질문이 부담은 되면서도 걱정해주시는 말씀이라걸 느낀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내 진로에 대한 질문은 삼가신다. 나는 그런건 상관없다는 듯이 당당한 척하며 얘기하지만,
사실 아직도 자신은 없다.
요즘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조차 조심하게 된다. 결국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인데, 그게 무례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 질문하는 사람도, 답하는 나도 부담이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처럼 그냥 내 꿈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때마다 뭘 먹고살건지, 결혼을 할 수 있겠냐라는 질문이,
입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환청처럼 들릴 때가 있다.
걱정해주는 것에 감사해야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특히 가족들이 다 모이는 명절에는,
그 분위기를 보고 적당한 대답을 미리 준비해간다.
그들의 마음은 참 따뜻한데, 질문은 너무 날카롭다.
내가 이 질문을 이해하게 된 시점
뚜렷한 목표. 이런 것이 생기는 시점이 온다. 간간히 수입도 혼자 먹고살 정도는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좀 괜찮아진다. 꾸며낸 말이 아니라 덤덤하게 팩트만 말하면 되니까.
명절만 되면 달변가가 되어 미사여구로 '아직 잘 모르겠어요.'를 표현할 필요도 없다.
날카로운 질문에 든든한 방패가 생기는 기분. 요즘은 그래도 AI가 발달했으니 그런 것도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좋을 듯 하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른들은 신기하게도 용돈을 드리면 안심하신다. 마치 내가 여유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시는듯 하다.
그래도 나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언젠가 당당하게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더 이상 미래의 계획이 아니라
현재의 내 삶의 근황을 얘기할 수 있는 시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